'어울림' 장애인 기자단 - 2024년 6월 10일 한국민속촌_ 소풍기 (호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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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원IL어울림 작성일24-07-18 11:04 조회6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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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도 화살처럼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제 그제가 3월 달이 되어 봄을 맞이하는 옷을 입고 봄을 맞이하는 노래들을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얼어 있던 가지에서 초록색 새싹들이 가지를 뚫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성동 장애인 종합 복지관에서 운영이 되고 있는 보치아팀이 6월을 맞아 소풍을 가기로 했습니다. 소풍을 가는 곳과 소풍가는 시간이 정해져서 보치아팀은 소풍을 가는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소는 한국 민속촌이고, 시간은 8시까지 성동 장애인 종합 복지관으로 오면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다가 사람들을 태우고 10시까지 한국 민속촌으로 가는 것이 경로였다.
소풍가는 6월 10일 8시 성동 장애인 종합 복지관으로 성동 장애인 종합 복지관 소속 보치아 팀인 “햇빛사랑”팀이 모였다. 1시 30분가량 관광버스를 타고 한국 민속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버스에서 내려 인원 체크를 한다음 입장권을 샀다. 입장권 가격표는 한 사람당 성인/청소년 입장권 35,000원 아동 입장권 29,000원 경로/장애 입장권 25,000원 이었다.
우리는 총인원이 전 회장님(이양호), 총무님(김문수), 조주연(삼촌), 송숙(어머니), 도순자(이모님), 설용태(형님), 송기(형님), 미미(누님), 그리고 나 (호종민) 이렇게 9명이다. 그리고 인솔자님 한 명 (박인호) 10명의 입장권을 사고 한국 민속촌에 들어갔다. 오전 10시라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 추억을 더듬어서 한국 민속촌이라고 하면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서 민속촌의 초가집을 배경으로 가면쓰고 탈쓰고 또, 북, 징, 꾕꽈리, 장구를 치며 행차하는 우리나라 전통의 전해 내려오는 신명나는 거리의 풍경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민속촌에 사람들이 없어 거리에서 예전에 풍경을 보지 못 하는 것 같아 거리에서 안내문과 오늘의 일정을 보고 있었다. 일정을 보고 있는 저를 보시더니 총무님께서 우리팀을 모아놓고서 “지금은 민속촌을 보고 싶은데를 보고 12시에 식당에서 모이기로 합시다”. 우리는 총무님의 말씀대로 2시간 동안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자유시간을 가지고서 한국 민속촌을 속속들이 구경하고 오기로 했다. 어렸을 때 기억속의 민속촌과는 많이 달라진 것도 같고 또, 시간이 많이 흘러서 민속촌이 민속촌처럼 다가오지는 못했다. 어렸을 때의 민속촌은 아빠, 엄마의 고향인 시골집중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이장님네 혼례를 한다던가 설날을 앞두고서 미리 모여서 윷놀이나 씨름같은 고유의 놀이를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으로 기억 하는데 이제는 민속촌이 박물관 같이 다가와 조금은 섭섭하면서도 아쉬웠다. 12시가 되어 식당에서 모여 오후 1시까지 식사하고 오후 2시까지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1시간 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을 찾아 구경하기로 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민속촌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렸을 때의 추억인 풍물패가 거리에서 공연을 한다기에 어렸을 때의 기억에서 놀아보고 싶어서 풍물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만의 시간이 흘렀을까 저기 멀리에서 북, 징, 꾕과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피리를 불며 상모를 돌리면서 내 앞에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흥분을 하였고 먼 기억속으로 딸려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난 또, 실망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풍물패가 어렸을때의 기억속의 풍물패가 아니었다. 마치 그냥 연극 극단의 공연같이 뭔가를 인위적으로 보여지기위한 공연이라고 할까 ? 마치 로봇을 보는 기분 이었다. 풍물패는 흥이나서 열심희 하기보다는 시간이나 채우고 떠난다는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풍물패를 보다가 말고
얼른 밖으로 나와서 2시까지 약속한 장소로 가서 사람들이 모일때까지 기다렸다가 모여 관광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정말로 아쉽고도 섭섭한 감정을 뒤로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울림’ 장애인 기자단 호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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